
빨리 감기 하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 몇 번이나 있으십니까. 저는 어제 출근길 지하철에서만 세 번은 생각했습니다. 2006년 개봉한 애덤 샌들러 주연의 〈클릭〉은 바로 그 욕망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코미디인 줄 알고 앉았다가, 후반부에 소리도 없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만능 리모컨
건축가 마이클은 밤샘 작업에 치여 사는 전형적인 현대인입니다. 잠이 부족하고, 가족과의 약속은 뒤로 밀리고, 리모컨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짜증부터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발명가 모티에게서 인생 전체를 조작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건네받습니다.
이 리모컨의 설정은 일종의 내러티브 장치(Narrative Device)입니다. 내러티브 장치란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소품이나 사건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단순한 리모컨이 아니라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라는 뜻입니다. 이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오히려 이 유치함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봅니다. 어른들이 이미 잊어버린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력을 다시 불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은 처음엔 광고를 스킵하고, 아내의 잔소리를 음소거하고, 싫은 상사에게 화를 내는 장면을 되감기로 써먹습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봤을 때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친척 모임에서 숙모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때, 회사 회식이 두 시간을 넘어갈 때, 그 순간만 빨리 감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공감대가 영화 전반부를 끌어가는 힘입니다.
빨리 감기
문제는 리모컨이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학습한다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영화 서사 용어로 오토파일럿(Autopilot)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토파일럿이란 조종사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항공기가 설정된 경로를 따라 자동으로 비행하는 기능에서 나온 말로, 인간이 의식하지 않아도 익숙한 패턴이 자동 반복되는 상태를 비유합니다.
마이클은 승진이 안 된다 싶으면 그 시간 전체를 통째로 건너뛰고, 지루한 가족 시간은 스킵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긴 모든 순간을 날려버립니다. 그 사이 리모컨은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있고,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고, 함께 살던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단순한 공상과학 설정이 아닌, 실제 삶의 패턴을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습관 자동화(Habit Automatic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습관 자동화란 반복적인 행동이 의식적 판단 없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매일 출근길을 거의 생각 없이 걷거나, 스마트폰을 의식도 못한 채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이 상태입니다. 마이클이 리모컨에 의존한 삶도 결국 이 자동화된 회피의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적인 선택을 단순화하여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불편한 순간을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 회피 자체가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립니다. 마이클의 리모컨은 그 기본값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낙차
〈클릭〉이 완성도 높은 작품이냐 묻는다면, 저는 솔직히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전반부의 슬랩스틱(Slapstick) 코미디가 지나치게 길고 가볍다는 지적이 꽤 있습니다. 슬랩스틱이란 과장된 신체 행동과 소음을 이용한 원초적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형식으로, 찰리 채플린 시대부터 내려온 고전적 기법입니다. 애덤 샌들러 영화 특유의 이 스타일을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전반부에서 이미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클릭〉의 평론가 지수는 43%에 불과하지만, 관객 점수는 72%에 달합니다(출처: 로튼 토마토). 이 수치 자체가 이 영화의 성격을 잘 설명합니다. 비평적 완성도보다 대중적 공감력이 훨씬 강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 전반부와 후반부가 같은 영화 맞나 싶었습니다. 화장실 유머로 가득한 앞부분과, 아버지를 잃은 후 마이클이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면을 재생하는 뒷부분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습니다. 이 톤의 낙차(Tone Shift)가 단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 낙차가 오히려 충격을 크게 만드는 장치였다고 봅니다. 웃고 있다가 갑자기 가슴을 치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의도한 감정의 흐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클릭〉에서 주목할 만한 감정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아와 마술을 보여주는 장면
- 아들 결혼식에서 마이클이 쓰러지는 장면
- 꿈에서 깨어난 마이클이 부모님께 달려가는 장면
-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가족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이 네 장면은 어떤 분이 보셔도 감정을 건드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도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코가 시큰해졌습니다.
가족의 소중함
가족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흔한 클리셰(Cliché) 중 하나입니다. 클리셰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신선함을 잃은 표현이나 설정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클릭〉의 결말이 식상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히 계십니다. 저도 그 지적 자체는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본 다음 날 출근길이 이상하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지하철 안의 소음이 평소보다 덜 짜증스러웠고, 사무실 책상에 앉으며 오늘이 여기 있다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메시지가 클리셰라도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빨리 감기 하고 싶었던 그 모든 순간들, 그게 사실은 당신의 인생 전부였다면 어떻겠냐는 것입니다. 출근길, 별거 아닌 부부 싸움, 시끄러운 가족 식사, 끝날 것 같지 않던 친척 모임. 그것들을 다 건너뛰고 나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그 질문을 제대로 맞닥뜨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가 충분히 본 값을 했다고 판단합니다.
애덤 샌들러 영화 중 감동을 원하신다면 〈클릭〉은 꽤 좋은 선택입니다. 전반부의 유치함을 버티고 나면, 후반부가 그 값을 돌려줍니다. 코미디로 시작해 인생 영화로 끝나는 경험, 생각보다 드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