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타란티노 영화라길래 과격한 폭력 액션 정도를 예상했는데, 스크린 앞에 앉은 지 20분 만에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복수와 생존, 그리고 역사의 잔혹함을 타란티노식 대체역사(alternate history)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통쾌하면서도 찜찜한, 그 기묘한 감정의 정체를 이 글에서 같이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한스 란다
저도 처음엔 한스 란다가 그냥 전형적인 나치 악당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는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너무 유능해서 더 무서웠습니다. 프랑스 시골 농가에서 농부를 심문하는 약 20분짜리 오프닝 시퀀스, 그 긴 장면 내내 란다는 차를 마시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정중하게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결국 마룻바닥 아래 숨어 있던 유대인 가족의 위치를 알아냅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한 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이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거창한 이념이나 광기가 아니라, 그저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에서 대규모 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철학적 개념입니다. 아렌트가 1963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며 정립한 이 개념은 란다 대령이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됩니다(출처: 한나 아렌트 연구소).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역할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Academy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or)이란 미국 아카데미 영화예술과학원이 주조연 남자배우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영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기상 중 하나입니다. 악마적인 우아함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구현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왈츠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이끄는 축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제 머릿속에서 가장 오래 남은 건 그 오프닝 장면이었습니다. 선량한 농부가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이 채 20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섬뜩했습니다.
쇼샤나의 복수
저는 이 영화에서 쇼샤나(멜라니 로랑)의 서사가 가장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가족을 눈앞에서 잃고 필사적으로 달아난 소녀가 4년 뒤 파리에서 '엠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을 운영하며 복수를 준비하는 이야기입니다. 피 묻은 얼굴로 들판을 가로질러 달아나던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치 간부들을 한꺼번에 태워버릴 계획을 세운다는 설정은, 분명 서사적으로 강렬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쇼샤나를 트라우마 생존자(trauma survivor)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생존자란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2세대, 3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보건원(NIH)). 여기서 PTSD란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경험한 후 반복적인 플래시백, 회피 행동, 감정 마비 등을 겪는 불안 장애를 뜻합니다.
쇼샤나의 복수심을 단순한 카타르시스로 소비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지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꼈을 공포와 분노, 유대인 신분을 숨긴 채 독일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일상의 긴장감, 그 복합적인 심리가 영화 안에서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느낌입니다. 분노와 복수심이라는 단일 감정으로 수렴되기엔, 쇼샤나라는 인물이 감당했을 무게가 훨씬 무거웠을 테니까요.
대체역사가
제가 직접 영화를 봤을 때, '개떼들(The Basterds)' 파트는 확실히 영화의 오락성을 담당하는 축이었습니다.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미군 특공대가 독일군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 '곰 유대인' 도니 하사의 등장, 그리고 술집에서의 혈투. 타란티노 특유의 장르 문법(genre grammar)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장르 문법이란 특정 장르 영화가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서사적 약속과 규칙을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스스로 판단을 유보하게 된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나치의 패배는 수천만 명의 희생 끝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역사를 타란티노식 판타지로 재구성해 '유대인 특공대가 히틀러를 불태워 죽인다'는 대체역사적 결말을 내놓는 것이 과연 피해자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역사의 고통을 오락적 쾌감으로 소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는 분마다 답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제 역사적 비극(홀로코스트)을 배경으로 삼되, 결말은 철저히 허구의 복수극으로 구성
- 나치 가해자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
-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상실감을 오락의 문법으로 다룬다는 비판이 공존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점이 이 영화를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거래
영화의 후반부에서 가장 기묘한 장면은 한스 란다가 알도 레인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대목입니다. 나치의 패배를 감지한 란다가 스스로 투항하면서, 자신의 공을 인정해달라는 조건을 내거는 장면입니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유능한 인물이 결국 자기 생존을 위해 체제를 배신하는 이 장면은, 이념보다 실리를 앞세운 관료주의적 악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시각, 쇼샤나와 마르셀은 불이 잘 붙는 나이트레이트 필름(nitrate film)을 이용해 영화관을 불바다로 만들 준비를 마칩니다. 나이트레이트 필름이란 1950년대 이전에 주로 사용되던 영화 필름 소재로,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를 기반으로 하여 가연성이 극도로 높습니다. 쇼샤나가 이 필름을 복수의 도구로 선택했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합니다. 나치 선전 영화가 상영되던 그 스크린에서, 같은 영화적 물질이 복수의 불꽃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타란티노가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메타적 발언을 하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영화는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선전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동시에 역사의 상처에 응답하는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 질문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감독이 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마에 칼로 새겨진 란다의 표식과 함께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분명 논쟁적인 영화입니다. 역사적 비극을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비판과, 그 오락 뒤에 숨어 있는 묵직한 질문을 동시에 안고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통쾌한 복수극으로 보기보다, 역사의 고통에 영화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도전적인 시도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오프닝 20분만 보더라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