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여학생들이 모인 학교의 진짜 목표가 '시집 잘 가는 것'이었다면 믿겠습니까.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설정 자체가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이건 픽션이 아니라 1950년대 미국 엘리트 교육의 실제 민낯이었습니다.
웰즐리
영화의 배경인 1953년 매사추세츠주 웰즐리 컬리지는 실존하는 명문 여자대학교입니다. 오늘날에도 힐러리 클린턴, 매들린 올브라이트 같은 인물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지만, 당시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한 것은 학문적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집안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게 웰즐리가 정의한 '성공한 졸업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젠더 사회화(gender socialization)입니다. 젠더 사회화란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사회가 기대하는 성별 역할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웰즐리의 학생들은 이 과정이 너무나 철저하게 이루어진 나머지, 결혼을 위해 학교를 중퇴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으로 여겨지는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결혼반지를 끼고 캠퍼스를 걸어나가는 게 박수를 받는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처음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가 싶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 미국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약 34%에 불과했으며, 기혼 여성의 경우 직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출처: 미국 노동통계국). 이런 구조적 맥락 없이 캐서린 왓슨의 수업이 왜 그토록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캐서린 왓슨
캘리포니아에서 웰즐리로 부임한 미술사 강사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처음 한 일은 교과서를 덮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부상당한 들소'처럼 수만 년 전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부터 수틴의 도살된 소 같은 20세기 표현주의 회화까지 꺼내놓으며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아름답습니까?" 그리고 학생들이 머뭇거리면 다시 물었습니다. "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이 방식의 핵심은 도상학적 분석(iconographic analysis)에 있습니다. 도상학적 분석이란 작품의 시각적 요소 너머에 담긴 상징과 맥락을 읽어내는 방법론으로, 단순히 '예쁘다, 아니다'라는 감상을 넘어 작품이 놓인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함께 해석하는 접근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림을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 찬 일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왓슨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한 것은 미술의 기술적 정교함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교과서 밖의 현대미술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끌었는데, 이 방식은 당시 학교 당국과 동료 교수진의 강한 반발을 샀습니다. 학과장은 그녀에게 커리큘럼만 가르치고 교수진과 전문적인 관계를 유지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는 건 단순히 정보 하나를 더 얹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평생 믿어온 세계 전체를 흔드는 일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끼는 것도 그렇습니다. 누군가의 관점을 진심으로 바꿔놓은 순간, 그 사람이 처음에 보이는 반응은 감사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분노입니다.
왓슨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작품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이 수틴의 도살된 소입니다. 이 작품은 표현주의(Expressionism) 계열의 대표적 문제작으로, 표현주의란 외부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작가의 내면 감정과 주관적 세계관을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로 드러내는 미술 사조를 말합니다. 기괴하고 불편한 이 그림을 통해 왓슨은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를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캐서린 왓슨의 수업 방식을 관통하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과서 밖 현대미술 작품을 직접 가져와 학생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 '왜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가'를 먼저 묻는다
- 졸업 후 결혼 외에 법대 진학 등 다른 가능성을 수업 안에서 꺼내 논의한다
- 캐서린 자신도 유럽에 가본 적이 없음을 밝히며 권위보다 질문을 앞세운다
진짜 교육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캐서린의 차를 뒤쫓아 달리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괜히 목이 메었습니다.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서.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 궤도를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고민하는지.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변혁적 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변혁적 학습이란 기존의 가정과 신념 체계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되는 학습 과정을 의미합니다(출처: 미국교육연구협회). 캐서린이 학생들에게 한 것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정보를 쌓아준 게 아니라 기존의 정보를 의심하게 만든 것.
다만 제가 이 영화에서 불편하게 느낀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캐서린이 너무 정답인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결혼을 선택한 학생을 일종의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배치합니다. 그런데 1950년대에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도 한 사람이 진심으로 고른 삶일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음의 기준을 또 한 사람이 정한다면, 그것도 결국 다른 형태의 강요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길을 알려주는 선생은 많습니다. 길이 막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선생은 드뭅니다. 근데 그 막힌 길의 반대편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선생 역시 또 다른 벽이 됩니다.
정리하면, 이 영화가 진짜 가치 있는 이유는 캐서린이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녀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게 핵심입니다.
살면서 저는 자꾸 묻게 됩니다. 저한테 그런 어른이 있었나. 그리고 저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나. 둘 다 확실한 답이 없어서 좀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압니다. 답을 주는 사람보다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훨씬 드물고, 그래서 훨씬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번쯤은 자기 주변의 '캐서린'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