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또 다른 우주 재난물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영 내내 제가 앉아 있던 자세가 점점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화성에 혼자 남겨진 식물학자 한 명이 수학과 식물학으로 죽음을 버텨내는 이야기. 〈마션〉은 그 설정 하나만으로 2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영화입니다.
생존 의지
제가 직접 계산해보고 놀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가 처음 확인한 식량은 고작 68솔(Sol) 분량이었습니다. 여기서 솔이란 화성의 하루를 뜻하는 단위로, 지구의 24시간보다 약 39분 긴 24시간 37분에 해당합니다. 혼자 먹으면 최대 400솔까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는 561솔이 필요했습니다. 160솔의 간극. 이 숫자가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상황에서 와트니가 선택한 방법이 놀랍습니다. 그는 MDV(화성 강하선)에 남아 있던 하이드라진(Hydrazine)을 이리듐 촉매 위로 흘려 보내 수소와 질소로 분해했습니다. 하이드라진이란 로켓 연료로 쓰이는 무색 액체로, 이리듐 촉매와 반응하면 분자 단위로 분해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수소를 태워 물을 만들고, 그 물로 화성 토양에서 감자를 재배한 것입니다. 식물학자의 지식이 문자 그대로 생사를 가른 셈입니다.
와트니의 생존 방식을 보면서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며칠 만에 붕괴됐을 환경에서 그는 디스코 음악을 틀고, 일지를 쓰고, 농담을 던집니다. MBTI 관점으로 표현하자면, 외부 자극 없이도 내면에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내향형(I) 기질이 화성이라는 극단적 고립 환경에서는 오히려 생존 유리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저만의 해석이지만, 혼자 식물을 기르고 문제를 분석하며 루틴을 유지하는 모습은 그 해석을 꽤 설득력 있게 뒷받침합니다.
화성 농업
이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화성에서 감자 새싹이 처음 올라오는 순간을 말합니다. 인간의 배설물을 비료로 쓰고, 로켓 연료에서 뽑아낸 수소로 만든 물을 머금은 화성의 흙에서 작은 초록 잎이 고개를 내미는 그 장면.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NASA는 화성 토양에서의 식물 재배 가능성을 꾸준히 연구해왔습니다. NASA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화성 토양은 퍼클로레이트(Perchlorate)라는 독성 화합물을 다량 포함하고 있어 정제 없이는 식물 재배가 불가능합니다(출처: NASA). 퍼클로레이트란 염소 원자를 포함한 산화제 화합물로,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인체에도 유해한 물질입니다. 영화가 이 부분을 단순화한 건 사실이지만, 와트니가 인간 배설물로 유기물을 보충하고 물로 퍼클로레이트를 희석하는 과정 자체는 실제 토양 정제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경작 가능한 토양, 즉 레골리스(Regolith)를 개조하는 과정도 과학적으로 흥미롭습니다. 레골리스란 행성 표면을 덮고 있는 미세한 암석 가루와 먼지의 혼합층을 의미합니다. 지구의 흙과 달리 유기물이 전혀 없어 그 자체로는 생명을 키울 수 없습니다. 영화가 이 척박한 조건을 상세히 묘사한 덕분에 새싹 한 포기가 갖는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와트니가 스스로를 "화성을 기술적으로 식민지화한 최초의 인간"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웃긴 말이지만 실제로는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다른 행성에서 작물을 재배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니까요. 유머와 사실이 공존하는 이 대사 하나가 와트니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귀환 작전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철저히 수치로 작동합니다. 제가 직접 메모까지 해가며 봤을 정도로, 이 장면의 긴박감은 숫자에서 나옵니다. 구조를 위해 개조된 MAV(화성 상승선)는 발사 과정에서 12G에 달하는 중력 가속도를 발생시킵니다. 여기서 G란 중력 가속도 단위로, 인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통상 약 9G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2G라는 수치는 의식 상실과 내부 출혈이 실제로 가능한 범위입니다.
MAV와 헤르메스 우주선의 조우 속도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처음에는 초속 11미터, 엔진으로 거리를 줄이자 이번엔 초속 42미터로 치솟는 상황이 됩니다. 이때 와트니가 제안한 방법이 압권입니다. 슈트에 구멍을 뚫어 새는 공기를 추진력으로 삼겠다는 것. 영화에서 와트니 본인이 "아이언맨처럼"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 장면에서 웃음과 조마조마함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무모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마션〉에 대한 비판도 분명히 있습니다. 위기가 너무 매끄럽게 해결된다는 지적, 와트니의 심리적 트라우마나 우울감이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이 부분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실제 우주 비행사들이 겪는 고립과 심리적 압박은 영화가 묘사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두운 문제입니다. 미국 항공우주의학학회(AsMA) 연구에 따르면, 장기 우주 임무에서 인지 기능 저하, 감정 조절 어려움, 사회적 고립감 등의 심리적 문제가 실질적인 위험 요소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Aerospace Medical Association). 그 맥락에서 와트니의 유쾌함은 현실보다 이상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와트니가 훈련생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조언이 이 영화의 핵심을 가장 잘 요약합니다. 우주에서는 언젠가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그때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라는 것.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냥 시작하거나. 한 번에 문제 전체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면 결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 이 단순한 문장이 저는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와트니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이드라진 분해를 통한 수분 확보로 경작 가능 환경 조성
- 레골리스에 유기물을 혼합한 토양 개조와 감자 재배
- 패스파인더 탐사선을 통한 지구와의 통신 재연결
- 퍼넬의 중력 보조 항로 계획으로 헤르메스의 화성 귀환 경로 확보
- 슈트 가압 공기를 추진력으로 활용한 최후의 조우 작전
〈마션〉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건 단순히 시각효과나 스케일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과학을 무기로 삼아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인간 한 명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설득력 있는 건 와트니가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그냥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넷플릭스나 VOD에서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두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